[농수축산신문=이문예 기자]
친환경농업 육성의 일환으로 시작된 유기질비료 지원사업이 안정적 운영을 담보하지 못하게 됐다. 원활한 지방이양을 위해 정부가 한시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지역상생발전기금의 종료 기한이 내년 말로 바짝 다가왔기 때문이다.
유기질비료 지원사업의 규모 축소로 인해 농업인들의 다양한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지역상생발전기금 종료와 사업의 지방이양을 유예하고 면밀한 검토를 통해 합리적 해법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거세지고 있다.
이에 관련 유기질비료 지원사업 지방이양의 문제점과 우려점, 업계의 요구사항 등을 짚어보며 사업 전반을 점검해 본다.
완전한 지방이양 이후엔 예산 감소 불가피
유기질비료 지원사업은 농림축산 부산물의 자원화·재활용을 촉진하고 토양 비옥도를 증진해 지속가능한 농업을 추진하기 위해 1999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친환경농업 육성 정책의 시작과 함께 도입돼 지속적으로 예산 규모가 늘어 2017년에는 1600억 원 규모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를 정점으로 예산 규모는 2021년 1130억 원으로까지 줄었고 신청량 대비 지원율도 2013년 80.9%에서 2021년 59.7%까지 크게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8년 ‘재정분권 추진방안’에 따라 지방소비세율 4.3%를 인상하며 국고보조사업의 일부를 지자체에 이양하는 지방이양 사업이 추진됐다. 정부는 2단계에 걸쳐 2조9000억 원 규모의 15개 부처 소관, 80개 세부사업을 지방으로 이양했고 유기질비료 지원사업은 2단계 이양사업으로 2022년 지방으로 넘어갔다.
원칙적으로는 2022년부터 늘어난 지방소비세를 바탕으로 운영돼야 하지만 안정적인 지방 이양을 위해 정부는 ‘지역상생발전기금’을 통해 국비분을 내년까지 한시적으로 보전해주고 있다. 사실상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재원을 분담하는, 지방이양 전과 유사한 형태의 구조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내후년부터 지역상생발전기금을 통한 정부 보전금이 사라지면 지자체가 온전히 자체 재원으로 사업을 운영해야 한다. 유기질비료 산업계와 농업인들은 지자체의 사업 축소와 농업인의 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지속가능한 농업 육성이라는 유기질비료 지원사업의 본래 취지가 흐려질 것이라며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지방재정 여건 따라 사업 ‘흔들’ 우려
유기질비료 지원사업의 축소 우려는 지방이양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제기됐다.
지방이양 사업 시행 직전인 2021년 국비 약 1130억 원, 지방비 약 750억 원이 투입됐던 점을 고려하면, 완전한 지방이양 시 동일 사업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지자체는 기존보다 150%에 가까운 지방비를 증액해야 한다. 올해 기준 전국 재정자립도가 평균 43.18%이고, 가장 열악한 전북의 경우 23.64%에 불과하다는 점에 비춰볼 때 2021년 수준의 규모를 지방비만으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정현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지방재정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2027년 이후 안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지자체가 얼마나 되겠느냐”며 “지자체장의 선호도에 따라 사업이 임의로 축소될 가능성이 높아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류제수 가축분유기질비료협동조합 사무국장은 “이미 현장에서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며 “지방이양 사업의 운영 지원과 성과관리를 담당하는 행정안전부도 과거 유기질비료 지원사업이 매칭사업으로 명시돼 있어 정부 보전금이 있는 동안 예산이 축소될 이유가 없다고 했지만 실제 시·군 모니터링을 해보면 거의 다 예산이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향후 농가 부담도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업 수혜 농가 수 감소 외에도 유기질비료 품질 저하와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한 피해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조원석 농협경제지주 농자재지원국장은 “정부 보전금이 없어지면 농가가 구매하는 유기질비료의 가격은 50% 이상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농산물 유통 구조상 생산 원가가 상승해도 농가는 판매수익으로 보전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농가의 어려움은 더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친환경농업 확대 역행·경축순환 저해
지속가능한 친환경농업 육성을 궁극적 목표로 시행된 유기질비료 지원사업을 지방으로 이양하며 목적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국내 화학비료 사용량은 2011년 ha당 249kg이었으며 2023년에는 242kg으로 크게 줄지 않았다. 또한 화학비료나 가축분뇨 등을 이용하고 남은 양분을 나타내는 양분수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매우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고 토양 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유기질비료 지원사업은 지방으로 이양되며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세운 ‘친환경 유기농업 면적 2배 확대’와도 배치된다.
또한 현재 가축분퇴비를 비료로 활용하며 경축순환농업을 이뤄온 만큼 유기질비료 지원사업 축소는 축산농가의 퇴비 처리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조성근 한국친환경농업협회 사무총장은 “필수농자재지원법 제정으로 화학비료도 지원하면서 유기질비료는 궁지에 모는 등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성철 한국유기질비료산업협동조합 이사는 “유기질비료 지원사업은 축산 분뇨의 자원화를 통해 탄소중립은 물론 농가 경영 안정화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며 “단순한 보조사업이 아니라 우리 농업의 유지장치로 기능하고 있는 만큼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해야 함에도 지방에 기능을 이양해 농업과 축산 환경을 위축시킬 우려가 커졌다”고 말했다.
국가사무 ‘적합’ 의견...성급한 이양보다 면밀 검토 시급
일각에선 애초에 유기질비료 지원사업이 지방이양 사업 대상으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지방이양 대상 사업은 기재부를 중심으로 하향식(톱-다운 방식)으로 선정됐는데 유기질비료 지원사업이 포함된 2단계에서는 ‘지역밀착형 사업 중심’이라는 기준만이 제시됐기 때문이다.
친환경농자재 지원사업 중 유기질비료 지원사업만 지방으로 이양된 배경에도 궁금증이 실린다. 유기질비료 지원사업은 본래 농어촌구조개선특별회계를 재원으로 시행하는 친환경농자재 지원사업에 포함된 사업이었다. 토양개량제, 유기농업자재, 교육·홍보, 비료품질관리시스템 등 다른 내역사업 모두가 토양환경 보전과 환경친화적·안전한 농산물 생산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예산 비중이 가장 컸던 유기질비료 지원사업만이 유일하게 지방으로 이양됐다. 이양 대상 선정이 적정하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유기질비료 지원사업을 다시 국가사무로 환원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힘이 실린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23년 발표한 지방이양 사업들에 대한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1·2단계 지방이양된 사업은 전반적으로 지방사무에 적합하지만, 유기질비료 지원사업을 포함한 일부 사업은 국가사무에 더 적합하다는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유기질비료 지원사업의 경우 지방에 이양하기보다 국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관리를 강화해야 할 사업으로 본 것이다.
이와 관련해 변재연 국회예산정책처 경제산업사업평가과장은 “재정분권 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면밀한 모니터링을 통해 지자체 수행이 적합하지 않은 경우에는 중앙과 지자체 협력을 강화하거나 국가사무로 기능을 재분배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기질비료 지원사업은 1차적으로는 농업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근거법령인 농지법에 따르면 궁극적으로는 식량 공급과 국토 환경을 보전하는 데 필요한 농지를 지원 대상으로 볼 수 있다. 농지는 공익적 자원이며 지역 특성에 따른 선별재가 아님을 감안할 때 국가 차원에서 면밀히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방식 한국유기질비료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당장 농지와 농업인, 소비자 모두에게 피해가 불가피한 만큼 행안부도 일단 지방이양을 유예하고 여러 의견과 사례 등을 면밀히 검토해 국가사무로 다시 환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가사무로의 환원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지방으로 이양됐다 다시 국가사무로 환원된 사례가 있지만 유기질비료 지원사업은 이와는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최현숙 행안부 재정협력과 사무관은 “과거 사례들은 지방으로 사업이 이양됐으나 사업비가 이양되지 않았었고, 유기질비료 지원사업은 부가가치세를 지방소비세로 전환해 4.3% 인상하면서 지방재정이 늘어난 상황”이라며 “지금은 재정 확장성이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른 경우이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해 지방이양 유예와 국가사무로 환원할 여지가 있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Issue+] 유기질비료 지원사업 지방이양, 문제 없나 < 기획 < Issue+ < 이슈 플러스 < 기사본문 - 농수축산신문

